American defined
Russia에서 열리고 있는 동계 Olympics이 막바지에 접어들었습니다. 한국은 연일 관련 소식이 탑 뉴스로 나오고 있는 모양인데, 미국에서는 지난번에 말씀드렸듯이 관심이 있는 사람은 있지만 아닌 사람도 많아서, 미국의 대표적인 sports sites 두 곳의 어제 머릿기사가 대학 농구 1등 팀이 시즌 첫 패를 기록한 것이었죠. 한국에서는 큰 관심으로 다른 나라 선수의 이름과 전적까지 다 꿰고 있는 short-track skating은 한국에서 악명이 높은 미국의 모 선수의 예전 활약으로 그나마 미국인들에게도 좀 알려졌는데요, 요새 한국을 들썩이고 있는 한국출신의 Russia 국적 선수 사건도 미국에서 조금 화제였습니다. 물론 한국만큼 속사정이 다 알려진 것은 아니고, 대충 예전 Olympics에서 금메달을 딴 후 대표팀에 발탁되지 않아서 다른 나라로 옮겼다, 정도의 줄거리입니다. 틀린 얘기는 아니죠.
Source: Americanwiki
여기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올림픽에 출전도 하고, 메달까지 따니 참 잘됐다, 라는 반응과, 그럼 뭐 이거 용병수준 아니야, 라는 반응이죠. 그런데 사실 미국사람이 용병이라고 비꼬는 것도 좀 억지스런 느낌이 있습니다. 몇년 전에 Canada 출신의 ice dancing 선수가 미국으로 귀화하는 과정에서 특별 법안까지 만들어가면서 동계 Olympics에 미국대표로 출전할 수 있도록 한 전례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국 그 선수가 속한 팀이 미국 역사상 최초로 ice dancing에서 메달을 획득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한국 출신의 러시아 선수 얘기가 외국에 알려졌다는 것에 대한 한국인의 반응이었는데요, 망신스럽다, 라는 말이 많았습니다. 극히 한국적인 정서에서 나온 반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국 전체를 한 집, 또는 집단으로 보고, 그 속의 멤버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은 나 자신에 대한 평가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고방식이죠. 그래서 아유, 창피해, 라고 말하는데요. 아시다시피 미국사람은 한 집단의 일원이 벌인 일로 인해 그 집단 전체를 매도하는 일을 웬만해서는 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보통의 미국인은 그런 뉴스를 접하더라도 그 외국이 어디인지 기억을 잘 하지 못합니다. 관심이 그만큼 있지 않거든요. 그래서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지레 하고 계시는 거죠.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이고, 특히 20세기 이후 미국의 역사를 보면 다른 나라 출신으로 벌써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을 한 사람이 미국에 와서 미국 국적을 따고 그후 어디 출신의 미국사람으로 알려진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 국적을 따는 순간, 미국인이 되는 것이고, 대통령이 되지 못하는 것 외에는 적어도 법적으로는 미국에서 출생한 미국인과 똑같은 지위가 됩니다. 시민권을 따기 전에 말썽이 있으면 시민권이 나오지 않지만, 일단 시민권을 취득한 후에는 미우나 고우나 미국인으로서 보호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 출신의 미국인이 큰 사고를 쳤을 때도 미국인이 그렇게 한 것이니까 그 사고 자체에 대한 대응을 하지, 그 사람의 출신지나 출신국을 알아서 불이익을 가한다거나 하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없고, 그 다른 나라의 정부가 개입했다는지 하는 이유로 출신국을 거론해야 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개인이 한 일은 개인의 차원에서 끝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몇년 전에 있었던 모 대학의 총기난사사건에 대한 반응에서도 미국와 한국의 시각차이, 사고방식의 차이를 볼 수 있었는데요.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미국이 이 사건을 대하는 태도에는 한국을 탓하거나 한국에 보복하려는 것이 없었고, 그 학생 개인의 문제를 왜 그 상태가 되도록 방치했나 하는 미국 교육과 정신건강 care system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뤘죠. 그 학생의 직계 가족과 친척이 사과를 했음은 물론, 기억나시겠지만 한국 정부의 대처도 미국 관점에서는 매우 기이하리만큼 흥미로웠죠. 이 학생은 시민권자도 아니고 영주권자였지만, 국적의 문제가 아니라 이 학생이 십여년을 보낸 미국의 사회, 교육제도를 검토하며 이런 일의 재발을 막자는 데 초점이 맞춰졌죠. 즉 굳이 따지자면 이 학생이 그렇게 되도록 방치한 미국 사회의 책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사람이라는 개념은 법적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국인이 보편적으로 “미국사람”이라고 할 때 똑 떨어지게 정의할 수는 없어도 거의 동일하게 떠올리는 어떤 이미지에 들어맞는 사람만 가리키는 것도 아닙니다. 소위 전형적인 “미국사람”중에서도 알고보면 이민의 역사가 생각보다 짧은 집안 출신도 많습니다. 대부분 네 세대에서 여섯 세대 정도 거슬러 올라가면 다른 나라 태생의 선조가 있죠. 뉴욕의 경우는 더 최근에 이민온 가정이 많아서, New York City Mayor인 de Blasio를 보더라도 외조부모님이 Italia 출생입니다. 자기 조상의 고국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나는 뭐뭐-American이야,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미국에서 태어난 대부분의 사람은 그냥 자신을 미국인이라고 여깁니다. 우선은 자신의 혈통이 여러 민족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아서이고요. 혹시 같은 민족끼리 결혼을 해서 자신의 정체성에 원 출신지가 포함이 되더라도, 그저 정체성의 일부일 뿐, 그리 큰 의미를 갖지는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 “미국사람”들은 자기 자신도 그러니까, 자신이 현재 상대하고 있는 사람의 원래 출신지에 대해서 관심이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인종차별주의자를 제외하고는 누구를 봤을 때 그 사람이 미국사람인지 아닌지 가늠할 때 인종만큼이나, 또는 더 많이 좌우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다름아닌 미국적인 분위기인데요, 이것 역시 “미국사람”이라는 말만큼 딱 꼬집어 말하기 힘들지만, 미국문화가 낯설지 않고, 발음에 거의 외국어 억양이 없고, 또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을 뜻하겠습니다. 그런데 말은 해봐야 아는 것이지만, 이 문화를 잘 아는지 모르는지는 표정이나 차림새, 행동 등의 모습에서도 드러나기 때문에, 어찌보면 언어보다도 더 정직한 기준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비언어적인 측면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빨리 인정을 받고 정착하고 싶으신 분들의 대부분이 쉽게 보이고 딱 집어내기 편한 언어적인 면에만 신경을 쓰시고, 또 이민자나 유학생을 위한 여러 서비스의 대부분 역시 언어에 중점을 두고 있죠. 물론 영어를 잘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만, 영어만 잘해서는 미국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문화에 대한 지식을 쌓고, 이해하고, 소화해서 자기것으로 만드는 절차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바나나나 트윙키가 되자는 말씀이 아닙니다. 한국에 좋은 점이 많듯이, 미국도 알고보면 좋은 점이 많지만, 미국문화를 알아가고 미국사람을 이해하려는 것은 미국이 더 나아서가 아닙니다. 미국을 익히고 난 뒤에 상황에 따라, 내 기분에 따라, 미국 스타일 중에서 취사선택할 수 있고요, 뭐니뭐니해도 기왕 미국에서 사는 바에야, 누릴 수 있는 것을 다 누리고 보람과 만족을 느끼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언어를 배우면 입과 귀가 트이지만, 문화를 잘 알면 알수록 눈과 머리가 더 밝고 맑아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언어를 잘하면 기회가 오지만, 문화도 잘 알면 그 기회를 잡아서 좋은 결과를 낳을 확률이 훨씬 높아집니다. 사실 미국에서 살거나 학업, 또는 직업을 가질 때, 내 자신이 익숙하지 않아서 불편한 것도 있지만, 상대방이 나를 대할 때 느끼는 어색함, 이질감도 있죠. 물론 차별하고 무시하는 사람 있습니다만, 자신이 미국에서 받았다고 생각하는 차별과 무시 가운데는 어쩌면 상대방이 거북해서 한 언행을 잘못 해석한 것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서로 거북함을 덜 느낀다면 그만큼 내 선택의 폭이 넓어지겠죠.
미국사람의 대다수가 자기 나라가 좋아서 와서 공부를 하거나 살겠다는 사람을 보면 최소한 이론적으로나마 호의적이 됩니다. 자신의 조국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뿌리를 잃지 않고, 잊지 않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만, 내가 어떤 연유에서건 선택한 나라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조금 더 알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도 이 나라에 대한 예의임은 물론, 그게 궁극적으로 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길이 됩니다. 자신이 지금 이 순간, 누군가에게는 미국사람으로 비칠 수도 있다는 것, 알고 계신가요?